끌림 - 이병률

Review/book 2012. 3. 25. 16:16 |




이병률 시인의 글을 좋아한다.
그의 사진도 좋아한다.
떠나고 싶은데, 떠나지 못하는 나는 그의 글을 통해 어디든 갈 수 있다.
가고싶은 곳이 늘어날수록, 책꽂이에 여행에세이가 늘어간다.
관광안내책자는 필요없다.
조금만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너무 많은 정보들이 나온다.
그런 것보다는 그곳에서, 그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 그게 더 궁금하고 중요하다. 





끌림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이병률 (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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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어온 길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난 돌아오지 않을거야.



매끈한 질감이 아닌 거칠고 투박한 크래프트지로 만들어진 이병률 산문집.
그 안에 담긴 그의 감성은 섬세하다. 여리고, 차분하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그래요.
한 사람의 것만으론 가 닿을 수 없는 것,
그러기엔 턱없이 모자라고 또 모자란 것,
그래서 약한 물살에도 떠내려가버리고 마는 것,
한 사람의 것만으론 이어붙일 수 없는 것,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



당신은 모든 것에 있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하는 시간.
약속 장소에 나가는 시간.
비디오로 본 영화가 끝나고 엔드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나서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당신은 스톱 버튼을 누르며,
심지어 전화 받을 때도 벨이 다섯 번 이상 울린 후에야 겨우 받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그러니 당신에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어쩌면 사랑하는 일에도 당신은 똑같은 속도를 고집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당신의 습관을 이해하고, 당신의 갈팡질팡하는 취향들을 뭐라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당신이 먹고 난 핫도그 막대를 버려주겠다며 오래 들고 돌아다니다가 공사장 모래 위에 이렇게 쓰는 것.
'사랑해.'



'거북이는 그 속도로는 절대로 멀리 도망가지 않아요. 그리고 나보다도 아주 오래 살 테니까요.'
도망가지 못하며, 무엇보다 자기보다 오래 살 것이므로
내가 먼저 거북이의 등을 보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것.
이 두 가지 이유가 그 사람이 거북이를 기르게 된 이유.
사람으로부터 마음을 심하게 다친 사람의 이야기.



 
'사랑을 하면 마음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돼요. 마음이 엉키면 그게 바로 사랑이죠.'




사랑해라. 시간이 없다.
사랑을 자꾸 벽에다가 걸어두지만 말고 만지고, 입고 그리고 얼굴에 문대라.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으며,
내릴 곳을 몰라 종점까지 가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 보상이 없으며
오히려 핑계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랑해라. 정각에 도착한 그 사랑에 늦으면 안 된다.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 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서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




밤새 그녀는 또 울었나 보다. 얼굴이 많이 부어있다. 늘 울기를 잘하는 그녀는 가끔 말한다. '울고싶다'든가, '울었다'든가, '울게 될 거 같아'라든가 하는 따위의 시제를 바꿔가며 중얼거린다. 그러는 그녀를 귀찮아해본 적은 없다. 다만 같이 그 기분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조금은 문제였다. 무슨 주문처럼  달고 다니는 그녀의 그런 감정이 나에 비하면 훨씬 솔직하고 당돌하게도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울음이 더 이상 누군가에게 무기로도, 장치로도 작용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가졌다. 그만큼 그녀의 울음은 상투적이었고, 습관적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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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R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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