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를 다녀온 이후, 늘 오사카에도 가보고싶었다.

일본은 나와 잘 맞는 여행지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익숙한 언어, 잘 맞는 음식들, 위화감 없는 편안함, 혼자있어도 외롭지 않을 것 같은-

원전사고 이후- 모두들 말리지만- 부산보다 오히려 멀다는 오사카는 여전히 가보고싶은 곳.
오코노미야끼와 맛집을 좋아하는 내겐 성지같은 곳이다.
(무엇보다 여행은 휴식과 맛있는 것을 실컷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르륵- 서점에서 훑어보다가 망설임없이 사들고 와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필자여서 꼭 이런 방식의 여행을 하고싶다고 생각하게 했다.
글을 쓰고, 사진찍는 것을 좋아하고,
산책예찬론자이며 침대에서 뒹구는 시간을 좋아하는 필자가 또 다른 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책장을 넘기면서 공감 또 공감-
마치 내가 다녀와서 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거닐다교토,오사카일상과여행사이의기록
카테고리 여행/기행 > 기행(나라별)
지은이 전소연 (북노마드,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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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책하기에 좋은 장소로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곳을 선호한다. 숨을 깊이 내쉴 수 있는 공기와 관조할 수 있는 볕이 잘 드는 곳이면 더욱 좋겠다.


오전 10시의 산책은 명상하기에 좋고 오후 4시의 산책은 몽상하기에 좋다.


방에는 있어야 할 것들만,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자리를 지키는 것들을 신뢰한다.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나에게 침대는 섬이다. 인생이 지칠 때 어딘가 쉴만한 곳으로 상상하는 한적하고 따뜻한 섬처럼 침대는 하룻밤-적어도 그곳을 빠져나오기전까지-포근하고 쉴만한 섬이 되어준다. 때로는 둘만의 밀월을 즐길 수 있는, 야자나무 무성한 어딘가의 남쪽 끝 섬이 되기도 한다. 이왕이면 나는 남쪽 끝 섬을 택하고 싶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샤워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안부를 묻고, 산책을 하며 지냈다. "겨우 그러려고 거기에 갔어?"라고 누군가는 한심스런 눈초리로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샤워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안부를 묻고, 산책을 하며 그 어느때보다 진한 여행을 했고 '나는 이렇게 숨쉬고 있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알 수 없는 의무감으로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혹은 종아리가 터질 듯이 단단해지도록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닌 것이 무척 맘에 들었다. 그곳이 아닌 여기에 왔으니 이것은 봐야지 하며 의무감으로 돌아다니는 여행은 왠지 "나이도 먹을 만치 먹었으니 아무 말 말고 만나봐야지"하며 부모님이 전화번호 쥐어주시는 소개팅을 하는 것 같았다. 앞에서 언급한 소개팅 방식의 유경험자로 한마디 한다면, 대체적으로 결과는 암울하다는 것.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익숙해지는 것이 여행이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와 당신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가 시작되기까지 나는 당신을 지켜볼 것이고 가끔씩 미소를 보내기도 할 것이다.
당신과 나와의 거리는 가까워지거나 혹은 멀어질 것이다.
그러나 가깝고 먼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당신이 내 뷰파인더 안에 있느냐 없느냐이다.
당신 주변을 서성거리던 나는 호흡을 멈추고 셔터를 누르게 될 것이다.
당신과 나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결정적 순간은 불과 몇 초 안에 찾아온다.
그러니 타이밍을 놓치지 말자. 사랑이든 사진이든 타이밍의 문제다.


"어디서든 네 자신을 잃지 않으면 돼, 우린 겨우 시작이니까."



고백하자면 나는 소심한 A형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나는 우유부단한 A형이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어렵고, 무언가에 '홀릭' 되는 것을 세상에서 두 번째로 두려워한다. 그렇지만 귀가 얇고 줏대가 없어서 일단 홀릭되고 나면 무모할 정도로 선택이 쉬워진다는 것이 나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음악은 우리가 생을 미행하는 데 꼭 필요한 거예요."


시계가 오후 네 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 시간이 되면 빛은 풍경들을 조용하게 어루만진다. 나는 빛이 어루만지는 그 풍경들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오후 네 시의 빛은 적당히 기울어져 주목받지 못한 풍경들까지 닿을 수 있고, 그때 풍경에 번지는 연한 미소를 훔쳐볼 수 있다. 나를 어루만지던 연한 손을 기억해본다. 이내 입가에 번지는 내 미소를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감아 버린다. 나는 까닭없이 적적해진다.


집으로 돌아와 뭐 특별히 먹을 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 제일 먼저 냉장고를 열어본다. 일종의 습관이다.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음악을 틀어두고 샤워를 시작한다. 일종의 외로움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누가 얼마나 더 좋아하느냐에 따라 강자와 약자가 갈리는 참으로 불공평하고 무참한 법칙이다. 그렇게 애가 탈 수가 없고 또 그렇게 무심할 수가 없다.


비가 내렸으면 하고 생각했다. 사실 며칠째 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토에 비가 내리면 깨끗이 잊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천천히 그리워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또 다른 시작이 올 것도 같았다. 우울한 밤기운에 감염된 까닭에 비라도 내리면 울컥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은 밤이었다. 타국에서 혼자 보내는 밤은 자칫 밤기운에 술렁거릴 수 있으니 늘 마음을 단단히 해야 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미처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는 것, 같은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다른 받아들임, 깊은 공감에서 받는 위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가만히 거닐다.'는 이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었다. 몇 권의 책을 더 읽고나면 나도 떠날 용기가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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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R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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